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피사로 (문단 편집) === 피사로 옹호 논리 및 반박 === * 아타우알파 체포 사건 피사로 옹호론자들은 책을 집어던진 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잉카 황제가 대규모의 인원을 이끌고 왔고 겁에 질린 스페인인들의 오해로 인해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피사로가 황제의 신병을 확보할 의도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며, [[에르난 코르테스]]의 경우처럼 수도에 손님으로써 입성한 뒤 은근슬쩍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 황제 살해 피사로는 반대했지만 다른 이들의 주장이 거세어 막을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사로가 반대했음은 기록상 빼도 박도 못하게 남아있는 분명한 사실이며, 에르난도 피사로나 에르난도 데소토 둘 중 한 사람만 남아있었어도 아타우알파는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뭐 그렇더라도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책임 정도만 지는 것이 맞다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 잉카 멸망 피사로는 잉카를 멸망시킬 의도도 없었고, 멸망시킨 원흉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망코 잉카를 황제로 세운 시점에서 피사로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며, 피사로의 계획은 해변가인 툼베스 지역을 직접 통치지역으로 삼고, 나머지 잉카 제국의 지역들은 잉카 황실 정부와 공동 통치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는 기록상으로도 분명하게 남아있는 사항이며 피사로의 실제 행적으로도 확인된다. 그 증거로 피사로는 망코 잉카가 제위에 오른 이후 2년 동안 그와 협력했으며, 정국이 안정됐다고 판단한 이후에는 쿠스코를 떠나 죽는 날까지 [[리마]] 건설에 몰두했을 뿐 쿠스코에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마 피사로는, 잉카 전역이 봉기하고, 이것이 잉카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않았고 예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잉카 멸망"이라는 부문에 한정하면, 피사로로선 억울하다며 개소리를 하고 있다. 피사로가 남긴 기록과 행적을 보았을 때 피사로가 당장은 아타우알파를 죽음으로 몰고 잉카를 멸망시킬 마음이 없었던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피사로의 계획과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어도 그가 착실히 닦아놓은 식민지배의 틀을 스페인이 곱게 접수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직접 잉카를 지배하려 하지 않은 것은 단지 인원이 적었기 때문이었지, 뒤에서 열심히 빨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피사로의 계획대로 진행되었어도 시간의 문제일 뿐 잉카는 착취당하다가 멸망하거나 명목상의 제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폭력적으로 납치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은근슬쩍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뿐이라거나, '납치만 했을 뿐 몸값은 상대가 선제시한 것이다'라는 것 등이 옹호측 주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무리수를 쓰지 않는 이상 옹호가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피사로 때문에 수천 명의 잉카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학살당했으며, 잉카의 유물들은 공중분해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황제가 먼저 제의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몸값을 받던 나라를 박살내서 털어갔던 것은 마찬가지이다. 동생 곤살로를 잉카로 데려가기로 한 것은 결국 피사로의 판단이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피사로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